일째 되는 날 이름을 부여받았다.

아내와 아이들은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했다 결혼한 여자들은 집안에서 미약한 존재였다. 그들에겐 가문을 위해 희생할 권리조차 없 었다. 그러나 그들은 가정을 관리했고, 그리스의 여자들처럼 방에만 갇혀 지내지는 않았다. 부인은 남편과 동반해서 외출을 할 수 있었고, 남자들이 모이는 식사모임 등에 참속할 수도 있었다. 또한 사회적인 활동도 가능했는데, 예를 들면 기혼여성만을 위한 의식 등에 참석하 곤 했다. 아이들은 태어나 이름이 정해지면서부터 정식으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. 사내아이는 태 어난 지 8일째 되는 날, 여자아이는 9 가장은 아이가 어떤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, 가령 기형아라든지 하는 경우에는 내다버릴 수 있는 권한도 있었다. 어린아이들은 화려한 토가(집정관이 입는 것과 같은 보라색 띠를 두른 것)를 입고 부적을 넣은 작은 주머니를 목에 걸고 다녔는데, 이것을 블라라고 불렀다. 딸은 결혼할 무 렵, 그리고 아들은 성년복을 입는 17세 정도가 되면 이 불라를 벗고 성인 대접을 받았다. 아이들은 집안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, 따로 마련한 좌석에 않아 집안의 연회에도 참석할 수 있었고, 종교의식에서도 아버지를 돕는 역할을 했다. 로마 사회의 기반, 클리엔텔라 관계 로마의 시민들은 자유시민으로서 그가 차지하는 서열에 따라, 때로는 그가 속한 계급에 따라 사회의 여러 조직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. 평범한 가문에 재산은 많지 않으나 야심을 가진 이들은 부자나 권력자의 클리엔텔라("피보호자"라는 뜻으로, 클라이언트, 클리앙 등으 로 표기하기도 하지만, 여기서는 라틴어의 원음을 기준으로 표기했다:역주)가 되곤 했다. 이 관계는 세습되었으며, 클리엔텔라와 파트로누스("보호자"라는 의미:역주)간에 아주 긴밀 하고도 상호적인 유대관계를 이루었다. 두 사람은 자신의 지위와 능력을 동원해서 상대방 을 보호하고 지지했던 것이다. 서로간의 충실함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상호부조 관 계는 정치, 사회, 재정 등 총체적인 면에서 로마인의 삶의 아주 중요한 근간을 이룬다. 조 세 유권주의를 바탕으로 한 로마 사회에서 평범한 개인이나 단체가 제대로 인정받기란 그만 큼 힘들었기 때문이다. 지역적인 클리엔텔라 관계말고도, 한 로마인은 다른 도시의 세력있 는 가문이나 같은 로마에 있는 가문의 클리엔텔라가 될 수도 있었다. 또한 정식 계약에 의 해 몇 개의 단체나 한 지방 전체가 로마 명문가와 클리엔텔라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었다. 고마의 퀴두스 아라디우스 루피누스 발레리우스 프로쿨루스(오늘날 아프리카 튀니지에 해당 하는 불라 레기아 출신으로, 원로원 가문의 후손)의 저택에서 발견된 6개의 동판에는 320-322년 사이에 아라디우스및 그의 후손들과 바자센시(튀니지의 나뵐과 수스사이에 자리 한 도시) 사이에 체결된 상호 보호조약이 기록되어 있다. 기독교가 널리 퍼지면서 로마 제 국에서는 주교가 파트로누스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흔했다. 상호부조 로마는 온통 수많은 계약과 사적인 관계로 얽힌 사회였다. 이런 관계 덕분에 로마인들은 일상생활이나 여행 중에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사건들로부터 안전과 편리함을 도모할 수 있었다. 클리엔텔라에 기반한 우호관계는 공화정 시기에 이어 제정기까지 이어졌다. 그리 고 "팍스 로마나" 덕분에 모든 계층의 로마인과 로마 내 외국인들이 수월하게 외국 여행을 할 수 있었다. 제국의 모든 시민과 도시들에 대한 결정권을 로마가 쥐고 있었던 만큼 이 시기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호스트와 클리엔텔라, 파트로누스 간의 연대가 필수적이었다. 여행할 때 후원과 접대를 후하게 받으려면 능력 있는 파트로누스 한 명만으론 충분하지 않았다. 로마의 국가체제가 어디서나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, 보험이나 은행, 통신 등의 체계가 광범위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. 따라서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으면서도 그 지역사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줄 중개인이 필요했다. 이 매개자가 호 스트이다. 계약과 방문여행을 통해 맺은 이런 우호 관계는 클리엔텔라 관계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졌다.